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 본토 항공전 (문단 편집) === 1944년 === 연합군은 새로운 장거리 호위기인 [[P-51 머스탱]]을 본격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하였으며 [[미합중국 유럽전략공군]]과 [[영국 공군 폭격기사령부]]는 [[대주간|아귀먼트 작전]]을 통해서 [[독일 공군(나치 독일)|루프트바페]]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힌다. 한편 이런 연합군의 전술의 변화는 독일 공군의 대응 또한 바뀌어야 함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모든 항공기가 폭격기에게 달려들면 되는, 비교적 단순한 상황이었으나 이제는 [[호위기]]에 대한 대책도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이에 독일은 각 기체에게 역할을 분담하게 된다. * 모든 [[Bf 109]]는 [[호위기]]들과의 교전을 담당한다. * [[Fw 190]]은 폭격기가 호위기와 분리된 이후에 폭격기를 요격한다. 하지만 이 독일 공군의 전략은 양면 전선으로 인한 공군 전력 분산과 연합군 공군의 전성기 독일 공군을 뛰어넘는 질적 향상, 적절한 전투기 조종사들의 재배치와 양성 기간 보장 실패에 따른 독일 공군의 질적 하락으로 기대한 만큼의 재미를 보는 데 실패한다. 특히 이 시점에서 우수한 성능의 P-51의 배치, P-38 및 P-47도 보조 연료탱크로 더 긴 항속거리를 가지게 됨에 따라 연합군의 호위 전투기들은 단순히 폭격기를 근접 호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아돌프 갈란트]]가 주장한 작전이기도 한 '선제압' 작전에 따라 독일군 전투기들이 편대를 짜기도 전에 그들을 와해시켰다. Bf 109와 Fw 190 전투기들은 제대로 폭격기 편대를 마주치기도 전에 미군 전투기들의 공격을 받았고 연합군 파일럿들에 비해 기량이 떨어진 독일 공군은 와해된 뒤 뿔뿔이 흩어진 채로 폭격기 편대를 상대하기 급급했으며 Bf 109에게 보호를 받아야 하는 Fw190, 건팩 탑재 Bf 109들은 P38, P47, P51 등 미군 전투기에게 일방적으로 요격당했다. 특히 적절한 실력을 갖춘 파일럿 양성 기간을 보장받지 못한 독일 신참파일럿들은 제대로 된 공중전 전술을 펼치지도 못한채 격추당했고 이로 인해 베테랑 파일럿들이 상대해야 하는 연합군 전투기 수가 급증하면서 베테랑 파일럿들의 손실로 직결된다. 1944년 2월 당시 항공기 손실률 33%, 파일럿 손실률 18%를 기록한 독일 공군은 3월에는 항공기 손실률 56%, 파일럿 손실률 22%를 기록해 본격적으로 몰락의 길을 걷더니 4월과 5월에도 각각 43%, 50%의 항공기 손실률을 기록하며 미군에게 교환비 면에서도 완벽히 열세에 놓이기 시작해 종전까지 시종일관 압도당했다. 이때부터 독일에 대한 전략폭격도 상당히 성과를 내기 시작한다. 1943년 9월부터 1944년 10월까지 독일 공군은 서부 전선에서만 14,720대의 항공기를 손실했는데 이는 동부 전선에서 잃은 항공기의 6배에 이르는 수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